독서

목소리를 드릴게요-정세랑 작가님

우당탕탕 개발 일지 2024. 1. 25. 11:04

※ 본 후기는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이며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 목소리를 드릴게요 」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작가님은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계시는 분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책은 정세랑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라는 SF소설입니다. 

 

  •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 11분의 1
  • 리셋
  • 모조 지구 혁명기
  • 리틀 베이비블루 필
  • 목소리를 드릴게요
  • 7교시
  •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목차별로 다른 소재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 

그렇지만 가끔 연고를 매니큐어로 바꿔치기해 둘 때가 있어.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내가 비겁하게 이곳을 떠나고 싶어 질 때에.

 

해결책을 찾은 뒤 결말을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도 가끔 사람에 치여 지낼 때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다녀오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11분의 1

함께 점심을 먹을 때가 하루 중 제일 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해도 됩니다. 천체투영관에서 태양계 파트 틀어주실 때.
목성과 목성의 위성들을 설명하실 때 말해도 됩니다.
저기에 친구가 산다고. 갈릴레이의 위성중 하나에 친구가 산다고요.

우리가 다시 만나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이야기의 중심 내용과는 거리가 있지만 

제가 편지를 받는 상대가 되었다고 상상하며 읽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리셋

모닥불 가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나를 죽이고 싶어 할지 모르지만,
지렁이들은 제때 왔다.
우리가 다른 모든 종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하기 전에 와줬다는 게 감사할 정도다.

 

사람들이 죽었다. 지렁이들은 사람을 표적 삼아 공격하진 않았지만 건물들을 집어삼키면서 같이 삼켜버렸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으므로, 그리고 그 죽음은 대개 즉시 확인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감정들은 유 예되었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때의 사람들이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했는지 알 것 같다.

 

지렁이를 보면 엄마들을 닮아 흥분했지만, 나의 흥분은 오해받을 여지가 있어 일부러 숨을 골랐다.
세상을 망하게 한 존재들을 애호하면 부적절하니까.

 

 

설정과 소재도 모두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세계를 멸망시킨 배후에 반전이 있어 재밌었습니다.

환경에 관한 이슈가 쏟아지는 요즘 저도 사회 구성원 중 한명으로 무얼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는 이야기였습니다.

 


모조 지구 혁명기

천사가 나를 골랐다.
"뭐, 어차피 자네는 구색 맞추기 용이니까"
천사가 나를 골랐다는 말에, 그 뒤에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천사는 날개가 없을 때부터 천사였고,천사가 내게 주는 안도감은
우주를 샅샅이 뒤져도 다른 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종류리라 확신한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한테는 그로테스크한 배경이 떠올랐지만 다른 독자들은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리틀 베이비블루 필

사람들은 시대가 흘러가는 진행방향의 굵은 화살표 위에 앉아 불행의 원인을 쳐다보지 않았다.
괴로워하며 더 괴롭게 만드는 액체를,고체를,기체를 삼켰다.

  작은 하늘색 알약은 모든 것을 바꿔 놓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치매 치료제를 다른 방향으로 사용하면서 사회의 질서가 변하게 되고

그리고 한세대가 지나서야 부작용이 나타나는 줄거리 입니다.

약물 오남용은 21세기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라 이야기에 몰입이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

승균은 선량한 교육공무원답게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그런 태도를 버렸다.
어쨌든 승균과 다른 수용자들은 자유를 대가로 지불하고 있었다.
평소 보잘것없이 취급했던 그 자유가 사실은 비싼 거였다는 데 굳이 토를 달 필요는 없을 듯했다. 

 

하필이면 사랑이 일목 대상인 일목인처럼.
물거품이 될 각오가 선 인어처럼.
"목소리를 드릴게요."

 

11분의 1에서 느낀 사랑과 모조 지구 혁명기에서 느낀 당혹스러움이 모두 느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연선의 회복여부가 소설에 없어 작가님이 생각하신 결말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메달리스트의 좀비시대 

영광은 분명 존재한다. 영광의 좁고 동그랗고 하얗게 빛나는 영역 안에 걸어 들어가고 싶은 사람에게 영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다.

 

내가 보낸 마지막 여름이 너랑 함께여서 다행이야.
내가 쏘는 마지막 과녁이 너라서 다행이야.

 

주인공의 회상과 현재 상황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충분히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좀비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제가 주인공이라면 정신이 반쯤 나갔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입니다. 

문명이 잘못된 경로를 택하는 상황을 조바심 내며 경계하는 것은 SF 작가들의 직업병일지 모르지만,
이 비정상적이고 기분 나쁜 풍요는 최악으로 끝날 것만 같다.
미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될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걸  구절을 보고 넷플릭스 다큐 「소셜 미디어」에서 '엔지니어들이  기술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까지 전부 알지 못한다.'라는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기술이 발전할 때 생길 수 있는 변수들을 사람이 전부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논해 보는 것과 아닌 것은 분명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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